나나가 루프하다가 정말 참지 못하고 쥰나에게 고백했던 시점이 있고 그 시점을 먼 루프 이후의 쥰나가 기억해내서 둘이 레뷰하는게 보고싶다 에서부터 시작된 썰인지 글인지 잘 모르겠지만 쥰나나나입니다. 약간 수정해서 정리해봤어요...
YASUHIRO님의 영롱한 유성군 들으면서 썼습니다 좋아하는 노래에요 들어주세요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니, 사실 별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화살들의 빛은, 하얀 제복의 위, 붉은 망토에 달린 금빛의 단추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다이바 나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호시미 쥰나는 떨리는 손을 뒤로 한채,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 이걸로 됐어. 그렇지? 나나, 대답해줘. 이제 이 잔인한 세상이 끝나는거야, 그렇지?
99회의 세이쇼제 스타라이트 무대가 끝난 이후, 그로부터 며칠인가 지난 이후였다. 호시미 쥰나는 유성우가 떨어질 예정이라는 기사를 들었다. 그래서 밤산책을 하고싶었다. 그렇게 된 김에 연습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옷을 갈아입고 편한 신발을 신은 뒤 나왔고, 운동장을 가볍게 달리다가 학교 안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던게 다였다. 다만 뭔가 봐서는 안될 무언가를 보게 되었을 뿐이었다.
쥰나가 기억하는 다이바 나나라는 사람은 같은 반이었고, 매우 상냥했다.눈에 띄게 친절하고 노래도, 춤도 뛰어났다. 언제나 밝았으니까 이런 모습은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이런 새벽에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울고 있던 다이바 나나라니!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게 분명한 모습이라서 너무 당황했다. 사실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모른 척 하고 조용히 갈 생각이었는데, 그 울고있는 등이, 흔들리는 모습이,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입을 막고 눈물만 떨구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는 느낌이라서, 어쩐지 달래줘야 할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다이바 씨."
당연한 소리지만, 다이바 나나가 보일 반응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게 당연했다. 흠칫, 하다가 귀신이라도 본 것 처럼 창백한 얼굴로 도망가다니. 그런 눈이라니, 그런 표정이라니. 다이바 씨는 자신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닌가, 싶어서 괴로워졌다. 내일 만나면 사과라도 해야 할까, 싶었다. 도망가버린 다이바 나나가 향한 방향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엉망이 되어버린 기분에 팔을 뻗어서 기지개를 쭉 펴보았다.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반짝거리는 별들 사이에서, 하나의 별똥별이 떨어졌고 이내 더 큰 별똥별이 하나 떨어지는게 보였다. 유성우들이 하늘에 가득히 흐르기 시작했다. 앗, 소원, 쥰나는 재빠르게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어떤 소원을 빌지? 사실 이런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건 알지만, 그 순간에 떠오른 것은 하나였다. 자신이 봐서는 안될 다이바 나나의 약한 면모를 봤으니까,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다이바 나나와 좋은 사이가 되게 해달라고 쥰나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렇게 떨어지는 유성우를 향해서 소원을 빌었다.
그 날 새벽, 쥰나는 꿈을 꿨다. 본 적이 없던 미소를 지은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자신에게 입을 맞추는 다이바 나나가 나오는 꿈이었다.
호시미 쥰나는 자신이 현실적이고 노력가라고 생각해왔다. 저 꿈을 꾸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렇게나 현실감 넘치고, 잡았던 손의 감촉과 입술의 따스함까지 생경한 꿈을 꾸고 나니 도저히 교실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어제 다이바 씨의 그런 모습도 봤는데 키스하는 꿈까지 꾸고 나니 도저히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지각을 할 수는 없으니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주치지 말고 신경쓰지 말자. 겨우 꿈에 불과하니까! 문을 열고 최대한 시선을 피한채로 다른 친구들과 인사를 나눴다. 카렌, 마히루, 마야, 클로딘, 후타바와 카오루코까지 인사를 하고 남은건 다이바 나나밖에 없었지만, 꿈과 현실도 구분하지 못한채로 이렇게 자기 감정조차도 제어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평소와 같이 수업이 시작되면서 점차 차분해졌고, 쥰나는 다른 것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수업에 집중했다. 그래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전처럼 츠유자키씨와 아이죠씨와 함께 점심을 먹으려던 시간이었는데, 누군가가 찾아왔다. 다이바 나나였다. 미소를 지어보인 얼굴과, 그 손에 들린상자에 쥰나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자신이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던 감정들이 최근 들어서 많이 느껴지는구나 싶었다. 그런 쥰나를 보고 다이바 나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호시미씨, 어제 밤에는 신세가 많았어. 사과의 뜻으로 가져왔는데 괜찮을까?"
"우와~ 호시미씨는 좋겠다, 이거 나나가 만든거야? 맛있는 냄새가 나! 마히루짱, 그치?"
"그러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쥰나가 열어봐야 하지 않을까?"
다이바 나나가 건넨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정성들인게 한 눈에 보이는 방울 카스테라였다. 바나나 향이 나는 카스테라들은 모두 한 입 크기였고, 설탕가루에 굴려져 반짝거리는 카스테라의 위에는 작은 편지도 한 장 올려져 있었다. 차마 앞에서는 편지를 여는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쥰나는 잽싸게 편지를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리고 눈 앞에 있는 다이바 나나를 향해서 미소지었다.
"다이바씨, 고마워. 직접 만든거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게 방울 카스테라인데, 진짜 기뻐."
"호시미씨가 좋아하는건 알고 있었어, 그래서 전보다 더 정성들여서 만들어봤는데 기뻐해줘서 다행이야~"
기시감이 느껴졌다. 쥰나는 자신이 방울 카스테라를 좋아한다고 말했던가? 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아마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이야기 했던걸 들었나보다, 하고 흘려 넘긴 뒤 웃으며 카스테라를 먹기 시작했다. 입 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며 달콤하고 은은하게 바나나 맛이 나는 방울 카스테라는 기시감 마저도 모두 녹여줬다. 행복한 맛이었다.
그 날 이후로 호시미 쥰나와 다이바 나나는 놀랍도록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1학년이 끝나고 2학년 기숙사 발표가 난 이후, 두 사람이 함께 같은 기숙사를 쓰기 시작했다. 정말 잘 맞는 룸메이트가 된 두 사람은 함께 점심을 먹었고, 쥰나가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이야기하고 있을때면 나나는 그 옆에서 즉석으로 연기를 해주기도 했다. 쥰나가 혼자 연습하러 나갔다 오면 나나는 항상 간식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쥰나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취향을, 나나는 전부 알고 있었다. 음식, 옷, 좋아하는 향까지. 두 사람의 취향은 이상할 정도로 잘 맞아 떨여졌다.
"어쩐지 우리, 아주 옛날부터 친구였던 것 같지 않아? 다이바씨는 나에 대해서 엄청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니까~"
쥰나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다이바 나나는 그저 웃어보였다. 평범한 웃음이었다. 그게 어쩐지 너무나도 신경쓰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친해졌는데도 쥰나는 다이바 나나를 여전히 성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니, 차마 이름으로 부를 수 없는 사정은 이 쪽에도 있었다. 사실 호시미 쥰나는 매일 밤마다 나나가 나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 속의 나나와 자신은 무척이나 사이가 좋았다. 두 사람은 함께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면서 몰래 산책을 다녔고, 때때로 입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손을 잡으며 두근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다이바씨를 나나라고 불렀고, 나나는 자신을 쥰나라고 불러줬다. 서로가 유일했던 것 처럼, 서로가 곁에 있는 유일한 사람인듯이 행동하는 꿈이었다. 그 꿈들은 너무 생생해서 때때로 일어나고 난 뒤에도, 한참 그 감정에 휘말려서 괴로울 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쥰나는 나나를 성으로 불렀다. 나나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꿈 속의 감정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꿈이고, 현실의 다이바씨는 자신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을테니까.
우리는 그저 친한 친구인데 이런 고민이라니. 어쩐지 자신이 다이바씨를 짝사랑 하는 것 처럼 느껴져서 웃고 말았다. 아니, 사실은 무서웠다. 왜 이런 꿈을 꾸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꿈은 호시미 쥰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마치 그 꿈들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도 되는 듯 느껴지고는 해서, 그게 너무나도 두려웠고, 고민되었다. 며칠이나 생각에 잠겨서 한 밤중에, 잠에 들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을 때, 처음으로 다이바씨가 카스테라를 사과의 선물로 가져왔을 때 줬던 편지를 읽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벌떡 일어나서 교복 앞 주머니를 뒤져보자, 사각형 모양으로 접혀진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개구리 무늬가 그려진 작은 카드에는 나나다운 글씨가 적어져 있었다. 호시미 쥰나에게, 로 시작하는 카드를 펼쳐보자 적혀진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시미 쥰나에게.
그 날 밤에는 신세가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역시 호시미씨는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네, 항상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알고 있어. 맛있게 먹어주면 좋겠네~
p.s. 나도 마히루짱처럼 쥰나라고 불러도 될까? 호시미씨도 나를 나나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다이바 나나.]
쥰나는 그 새벽에, 작은 카드를 한참이나 읽고 읽었다. 읽다보니 어쩐지 꿈 같은건 딱히 상관 없을 것 같았다. 이 카드를 받은게 한달도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이런걸 깜빡하다니, 싶었다. 꿈은 꿈일 뿐인데 현실의 다이바 나나는 꿈 속의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운 쥰나는, 아침에 눈을 뜨고는 제 얼굴을 바라보는 나나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야, 나나."
쥰나는 웃었고, 나나도 따라서 환하게 웃어줬다. 꿈은 꿈일 뿐이었으니까. 다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가면 좋았을텐데. 2학년이 되고 반장을 맡게 된 쥰나는 꽤나 바빠졌다. 올해의 세이쇼제는 100회였고, 2학년이 된 99기 A반들은 다시 스타라이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100회라는건 꽤나 의미있는 숫자였고, 새롭고 멋진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그 사이에 다이바 나나는 B반을 겸임한다고 말을 꺼내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지만, 쥰나는 기숙사에서 미리 들었던 내용이라 놀라지 않았다. 나나는 쥰나에게 있어서는 숨기는게 드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쥰나와 나나가 정말 숨기는것도 없는 절친한 친구라고 말하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나나가 쥰나에게도 숨기는 사실이 있었다. 종종 나나가 보여주는 표정들은 뭔가 달랐고, 종종 우울한 표정을 짓거나 힘들어보이는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고는 했다. 그런 나나를 볼때마다 꿈 속의 행복한 표정을 짓게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호시미 쥰나는 점차 깨닫고 있었다. 아, 내가 나나를 좋아하는구나. 꿈이라는건 결국 사람의 무의식이라고 하니까, 어쩌면 처음부터 나나에게 반해있었던건 아닐까? 결국 쥰나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했다. 다만 지금 당장 나나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나는 A반과 B반을 겸임하면서 바빴고, 스타라이트 무대에 굉장히 마음을 쏟고 있는 것 같았다. 99회 스타라이트같은 무대, 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나나가 가지고 다니는 각본은 얼마나 신경을 쓴건지 무척이나 낡고 여러차례 손을 본 것 같았다. 그래서 B반의 수업은 엄청 힘들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 쥰나는 정말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노을지는 하늘이 보였다. 눈 앞의 나나는 떨리는 손을 숨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한참이나 고민하는 얼굴이었고, 결국 눈을 질끈 감고는 책 한권을 내밀며 나나는 외쳤다.
"있지, 나는 쥰나를 정말 좋아해, 쥰나가 괜찮다면 나와 사귀어주면 좋겠어!"
말을 끝내자마자 도망가는 나나의 얼굴은 붉었고, 양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이 마구 흔들렸다. 고백을 한다면서 건네준 책은 셰익스피어의 명언 모음집이었다. 꿈 속의 자신은 마구 달려가서 나나를 붙잡고, 말을 건넸다.
"나나, 대답도 안 듣고 도망가는게 어딨어?"
"하지만 너무 무서웠는걸, 당장 거절당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았어..."
"거절당할걸 고민한거야?"
"누구라도 거절당할걸 고민하잖아, 이런 일은 처음인걸."
어째서인지 꿈 속의 자신은 어이없다는듯 웃다가, 나나를 안아줬다. 눈물을 떨구는 나나의 손을 붙잡았다. 나나의 손도, 자신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가 떨림이 멎을때까지 안아주고, 엉망이 된 나나의 얼굴을 닦아주며 웃어보이고 말을 건넸다.
"고백해줘서 고마워, 나나. 나도 정말 좋아해."
꿈에서 깬 뒤에, 한참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지각이라는걸 알고 있지만 도저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달콤한 꿈이라니, 현실에서 일어날리 없으니까 꿈이겠지만 꿈 속의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마치 입맞춤을 했던 꿈처럼. 정말 현실처럼. 언젠가 일어났던 현실처럼 느껴져서 그런지도 몰랐다. 차라리 평생 이런 꿈만 꾸면 좋을텐데,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시계를 보고서 펄쩍 뛰며 일어나고는 황급히 준비를 시작했다.
결국 지각한 쥰나를 A반의 친구들은 놀리기에 바빴다. 지각이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카오루코와 카렌보다 자신이 늦었다는 사실이 신경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그 날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나나와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나나의 얼굴을 봤다면 정말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을테니까. 쥰나는 오늘 밤에는 제발 이런 꿈 같은건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리고 빈 대로 이루어졌다. 이전과 같은 꿈은 꾸지 않았다. 더 이상한 꿈을 꿨을 뿐이었다.
이상한 무대, 기린, 흰색의 제복을 입고 양 손에 검을 든 나나. 마찬가지로 이상한 제복을 입고, 활을 든 자신. 99기생 A반 중에서 8명이 있었다. 카렌, 클로딘, 마야, 나나, 마히루, 카오루코, 후타바, 그리고 자신까지. 그렇지만 나나는 무대 위에 있었고, 레이피어를 든 텐도 마야와 싸우고 있었다. 날카로운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웃고 있는 기린을 나머지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꿈인데, 이상한 상황인데 알 수가 없었다. 꿈 속의 쥰나는 불안했다. 아, 이 꿈 속의 쥰나는 나나와 사귀고 있는 쥰나구나. 어째서인지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싸움은 계속 이어졌고, 두렵고 무서운데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다. 끝내 나나는 마야의 망토에 달린 금색 단추를 날려버렸다. 옆에 있던 클로딘이 프랑스어로 무언가를 외쳤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나나를 불렀지만, 포지션 제로를 외친 나나는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보지 않았다.
기린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너진 텐도 마야를 지나, 다이바 나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봤다. 나나는 자신이 있는 방향을 보며, 우는건지 웃는건지 모르겠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기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나나의 목소리 만큼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세이쇼제 99회의 스타라이트 무대의 재연을 원해."
나나의 입모양이 흐릿하게 보여왔다. 미안해, 라는 입모양 아래로 눈물이 떨어졌다. 무언가가 쥰나를 휘감았다. 원망, 절망, 사랑. 지금의 자신이 느낀 적 없는 감정들이 밀려왔다.
꿈에서 깨어난 쥰나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눈물로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울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주말이라서 다행인가,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수건을 들고 있는 나나가 있었다. 대체 그 기린은 뭔지, 재상연은 무슨 소리인지, 지난번 무대는 왜 나온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건, 꿈은 연결되어 있었다. 여태까지 꾼 꿈들은 모두 연결된 내용이었다. 마치 자신이 모르는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처럼. 그 생각이 들자 쥰나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걸 꿈으로 치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사실 꿈이 아니라면? 실제로 일어난, 혹은 일어났었던 일인데 자신이 기억을 못하는거라면? 혹시 나나는 알까? 급하게 씻고 밖에 나오자 식사를 준비해둔 나나의 얼굴이 보였다.
"나나, 질문이 있어."
"응, 쥰나, 말해줘."
나나에게 그 꿈에 대해서, 재상연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물어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다른걸 물어본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질문을 건넸다.
"나나는 말하는 기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쥰나? 갑자기 그런건 왜 물어보는거야?"
하지만 나나의 반응은 상상과 달랐다. 무서운 얼굴을 한 나나가 보였다.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을 가진 채로 굳어버린 나나의 얼굴을 마주한 쥰나는 꿈의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호시미 쥰나는 거짓말에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에는 진실과 거짓을 반 정도 섞어서 말을 건넸다.
"그냥, 악몽을 꿨는데 그런게 나왔던 것 같아서. 나나는 어떻게 생각해?"
"악몽이었구나, 음... 많이 무서울 것 같네."
무서웠던 나나의 표정은 풀렸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만난다면, 많이 무서울지도 모르겠어."
결국 주말이 끝날 때 까지, 쥰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 날 밤에는 어떠한 꿈도 꾸지 않았다. 푹 잠든 밤이었다. 평범한 월요일이 다가왔고, 그 날은 반에 새로운 전학생이 온 날이었다. 카구라 히카리 라고 하는 전학생은, 아이죠 카렌과 아는 사이 같았다. 다만 역시나, 싶었던 것은 카렌이 아는 사람 답게 제대로 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후가 되었을 즈음, 쥰나는 이상한 메일을 받았다. 기린모양의 마크가 빙글빙글 도는 메일이 한 통 도착했고, 열어보는 순간 쥰나가 그 동안 마음 안 쪽에 담아두었던 감정이 흘러나왔다. 혹시나, 라고 생각했던 것은 설마가 되었다. 메일을 승낙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게 된 제복, 자신의 마음 안쪽 깊은 곳에서 나오는 목소리.
"스스로의 별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러러보기만 하던 나는 오늘로 끝!
99기생 호시미 쥰나!
붙잡아 보이겠습니다. 나만의 별!"
눈 앞에 있는건 전학생인 카구라 히카리, 설마 했던 말하는 기린이 이야기 하는 것은 도저히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손에 들린 활과 화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떠올랐다. 이기게 된다면, 나나를 만날 수 있을까?
단검을 든 히카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미친듯이 쏘아올린 화살들은 히카리를 향했다. 히카리와 자신의 노래소리가 어우러졌고 두 사람 모두 필사적이었다. 거의 다 이겼나 싶었던 순간, 아이죠 카렌이 난입했다. 그리고 자신의 망토에 달린 단추를 떨어트린 카렌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나 약한데, 어떻게 나나를 만나겠어. 아마 그 순간의 나나는 분명히 결승이었겠지. 이제서야 모든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건 꿈이 아니었다. 그건 현실이었다. 히카리와의 레뷰가 끝나자마자 쥰나는 기린을 만나러 갔다. 기린은 자신의 기억이 엉망이 된 상황에 대해서도 "이해합니다" 라는 말로 끝내려고 했지만, 색다른 무대를 보여주겠다는 자신의 말에는 흥미를 보였다. 그래서 쥰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기린은 약속을 했고, 확신했다. 이게 끝일거야.
기린과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마구 달렸다. 기숙사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간신히 숨을 골랐다. 그런 쥰나를 보고 나나가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올랐다. 너는, 나를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나나, 다 알고 있었지?"
"쥰나?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
"모른 척 하지 마! 말하는 기린도, 이 이상한 무대도, 내가 그동안 꾼 꿈들도!"
나나의 모습에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사실 나나에 대해서 아는건 하나도 없었지만, 자신의 꿈들이, 그 고민들이 모두 현실이었던 사실이라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졌다. 이대로 있으면 나나에게 이 엉망인 감정을 쏟아낼 것 같아서, 그대로 도망쳤다. 울면서 도망쳐봤자 결국 학교라는 사실이 슬펐다.
그 날, 나나가 울던 그 장소에 그대로 자신이 앉아서 울고 있었다. 그 꿈속의 다정한 표정, 달콤한 미소, 서로 두근거리며 손을 잡고 거닐던 나날들, 처음으로 했던 입맞춤도, 그 이후에 벌어진 무대도. 나나는 나와 사귀면서, 정말로 나를 사랑한거야? 나를 생각했다면, 어째서 나를 두고 가버린걸까, 자신보다 중요한게 있었다는 사실이 슬펐다. 꿈 속의 자신은 정말로 나나를 사랑했는데, 나나만 바라봤는데.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라 곁에 있어줬다면 좋았을것을. 결국 그렇게 연습실에서 밤을 새우고, 교실에서 나나를 피해다녔다. 츠유자키씨도, 카렌도 자신에게 이상하다고 말을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세운 계획은 거의 완벽했다. 하지만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더라도 상관 없었다. 호시미 쥰나는 자신만의 별을 붙잡을 것이었다. 그리고 호시미 쥰나의 별은 다이바 나나였다.
하루 종일 자신에게 외면받은 나나는 표정이 점차 안 좋아졌지만 필사적으로 모른 척 했다. 오후가 되고, 핸드폰이 울렸다. 기린이 약속을 지켜줬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제복을 입고 활을 든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보여졌다. 조명이 비춰진다. 하얀 제복과 양 손에는 검, 양갈래의 머리카락. 딱딱한 표정을 지은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미소가 지어졌고, 이내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 맺힌 탐스런 과실!
하지만... 모두 연약하니까! 누군가가 지켜줘야 해!
99기생 다이바 나나!
내가 지켜 줄 거야, 계속! 몇번이라도!"
기린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렇다면 오디션 2일차, 진실의 레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톱스타를 목표로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빼앗도록 해봅시다."
웃음은 여기까지였다. 쥰나는 빠르게 화살을 쏘며 거리를 벌렸다. 나나는 검을 쓰니까, 거리를 유지하는게 중요했다. 물론 나나도 순식간에 자신을 뒤쫒으며 거리를 좁히려고 했고,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나나의 검을 활로 막으며 쥰나는 입을 열었다.
"나나, 지금부터 질문을 할거야. 대답해줘"
"쥰나? 이건 레뷰야, 나는 여기서 이겨야 한다고."
"나나는 나에게 고백을 한 적이 있어. 셰익스피어의 책을 주면서 고백하고 도망간 적이 있지?"
나나의 검이 멈칫 했다. 그 순간 쥰나는 빠르게 화살을 쏘며 거리를 벌렸다. 역시 꿈이 아니었다. 그 모든건 꿈이 아니라, 언젠가 있었던 일들이었다. 나나의 창백해진 표정이, 멈춘 검이 진실이라고 말한 셈이었다.
"나나는 나랑 손을 잡고 산책을 한 적이 있지? 엄청 떨린다고 그랬잖아. 그냥 손만 잡았을 뿐인데 나나도 나도, 둘 다 얼굴이 붉어져서 아무 말도 못했었어."
"쥰나, 어째서 그걸..."
"나나는 별이 가득한 밤에, 학교 뒤쪽에서 아무도 보지 않던 순간에 나한테 처음으로 입을 맞춰줬어. 그 때 얼마나 다정한 미소를 지었었는지 내가 다시 반했었는데."
"... ..."
"나나는, 언젠가의 레뷰에서. 이 무대에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재상연'을 선택했어."
어느샌가 쥰나는 질문이 아니라 확신을 가진 말을 이어갔다. 말을 멈출때마다 화살을 쏘았지만 나나는 피하지 않았다. 나나의 옷에 화살이 박혀들어갔다. 움직일 수 없도록, 움직일 필요가 없도록 나나는 점차 굳어가고 고정되어갔다. 이제 더 이상 쥰나는 '재상연'이 궁금하지 않았다. 나나의 반응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나, 내가 너에게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적은 그 동안에 없었어. 그렇지?"
"쥰나..."
나나는 울고 있었다. 말을 이어가기 힘들정도로 목소리가 잠긴채로 눈물을 쏟아냈다. 쥰나는 떨리는 손으로 활을 잡고, 화살을 위로 쏘아올렸다.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도 싸워야 했고, 그래도 이겨야 했다. 이 엉망진창인 세상을 끝내고 싶었다. 나나가 혼자 남아있는 세상은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소원을, 마음을 담은 화살은 위로 쏘아져 올라갔다. 어느샌가 주변은 별이 가득한 하늘이었고, 학교였고, 두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장소이자 처음으로 나나가 연약한 자신을 들킨 장소였다.다시 웃을 수 있도록, 내일이 올 수 있도록, 나나와의 미래를 자신의 손으로 붙잡기 위해서.
그 날, 소원을 빌었던 것 처럼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다. 아니, 사실은 별이 아니었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화살들이 하얀 제복의 위, 붉은 망토에 달린 금빛의 단추를 향해 나아갔다. 나나는 우는것도 웃는것도 아닌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쥰나는 그제서야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나, 사랑해."
나나의 망토에 달린 금빛 단추가 유성우처럼 튕겨져 나갔다. 그 순간 붉은 막이 내려갔다. 쥰나는 또각거리는 발소리를 내고, 자신의 활을 바닥에 놓았다.
"포지션 제로."
그리고, 다이바 나나를 끌어안았다. 더 이상 너를 혼자 두지 않을게. 이 사랑을 잊어버리지 않을게. 생각한 말은 많았지만 목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나나는 혼자서 그렇게 울 정도로 겁쟁이고 약한 사람인데, 어째서 자신은 그 많았던 순간들을 잊어버린건지 싶어서 눈물이 나왔다. 그저 그걸로 충분했다. 기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디션 2일차, 종료합니다."
기숙사로 돌아가던 길,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그날의 그 장소로 갔다. 처음으로 입을 맞췄던 곳, 나나가 우는걸 발견했던 운동장 너머, 쥰나는 한참이고 생각했던 말을 건넸다.
"있지 나나, 나랑 사귀어줄래? 나는 도망은 안 갈거고, 나나가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둘건데."
이내 붉어진 얼굴로 화를 내려던 나나를 붙잡고 안아줬다. 사실 아무것도 아는게 없었다. 왜 나나가 재상연을 선택했는지, 어째서 그때는 고백을 했는지, 왜 자신을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
"나나, 나 아직 아까전에 사랑한다는 말의 대답도, 사귀어달라는 말의 대답도 못 들었어."
"쥰나, 심술궂어..."
그렇지만 쥰나는 괜찮았다. 자신은 다이바 나나를 붙잡았고, 쥰나는 붙잡은 자신만의 별을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모르는 것은 알아가면 되는거니까. 진실을 모르더라도 사랑을 찾았으니 그걸로 만족했다. 더 이상 사랑을 잃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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